올해 청명절, 왕청적 렬사 리일선의 후손인 리광은 가족 3대의 숙원을 안고 특별히 호남성 익양시 도강현 마적당진을 찾아 반세기 넘게 헤여졌던 조부와 '상봉'했다. 70년이 넘는 가족 찾기 이야기가 마침내 원만한 결말로 마무리되였다.
마적당전역은 해방전쟁시기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49군 147사와 국민당부대가 호남성 도강현 마적당진에서 벌인 중요한 전역이다. 이 전투에서 해방군은 300여명이 희생되였고 현지 여러 곳에 무명 렬사묘를 남겼다. 마적당전역에서 희생된 길림적 무명 렬사들이 뿌리를 찾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저 호남, 길림 두 성의 퇴역군인 사무부문은 공동으로 정리작업을 전개했다.
2024년, 길림성 '길행군' 자원봉사협회는 주동적으로 나서 무명영웅들의 후손을 찾는 중임을 짊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은 방대한 력사자료에서 단서를 발굴하고 여러 지역의 정보를 가진 사람들을 방문했으며 기록 대조, 현지 조사, 유물 발굴, 엄격한 DNA 과학 감정을 거쳐 마침내 조선족 렬사 리일선의 신원을 밝혀내고 그의 후손인 리광을 찾아냈다.
임무를 받은 후 '길행군' 자원봉사자들은 흩어진 단서를 바탕으로 처음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탐색 범위를 좁혔다. 협회 고문인 고만상과 자원봉사팀은 연길, 훈춘, 왕청 등지를 오가며 수만건의 렬사 기록을 열람하고 조선족혁명렬사전기를 연구했으며 고령자들을 찾아다니며 구술 력사를 확인했다. 이후 탐색 범위를 장춘, 부여, 백성 등지로 확대했다. 반복적인 검토와 확인을 거쳐 마침내 두 성 군무부문의 공동 심의하에 40명의 길림적 렬사 명록을 정리하여 가족 찾기 후속작업에 튼튼한 기반을 마련했다.
왕청현 렬사명목을 살펴보던 중 고만상은 탐구가치가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 서류에 기록된 '리일선'과 '리일성'이라는 두사람의 정보가 매우 일치했다. 두사람 모두 조선족으로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여났고 모두 왕청현 출신이였으며 1946년 11월에 입대하여 모두 147사 440퇀 경위련 련장을 담임했고 1949년 8월 호남성에서 희생되였다. 과연 이 두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일가, 아니면 한사람의 두개 이름일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2024년 4월 7일, 고만상 일행은 왕청현 왕청진 춘화촌을 방문하여 진상을 확인했다. 마을 주민들의 안내로 마을에는 '리일성'도 그의 후손도 없지만 주민 리영석의 아버지가 리일선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리영석은 이미 작고했고 장남 리광과 차남 리일 두 아들이 있었다.
이 단서는 고만상 일행에게 큰 신심을 주었다. 리광이 한창 밭에서 농사차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밭으로 달려가 만났다. 대화에서 리광은 자신의 조부가 실제로 '리일선'과 '리일성'이라는 두개 이름을 사용했으며 집에 보관된 렬사증에 등록된 이름이 바로 '리일선'이라고 확인해주었다. 그날 밤, 리광은 렬사증의 사진을 고만상에게 보냈다. 여러 측의 정보와 서류 기록, 마을 주민의 기억, 그리고 가족이 간직한 실물증거가 완전히 일치했다. 440퇀 경위련 련장 리일성은 본명이 리일선이며 '리일성'은 입대후 사용한 이름이였다.
이에 따라 리일선(리일성)과 리광의 조손관계가 확인되였고 타향에서 70년 넘게 잠들어 있던 렬사는 마침내 가족과 '련락'이 닿았다.
리광의 회상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할머니로부터 조부는 주력 부대의 련장이였으며 호남 마적당에서 희생되였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묘지에 묻힐 때, 전우들이 그의 리력을 기록한 쪽지를 유리병에 봉인하여 함께 묻었다고 한다. 조부의 안장지를 찾아 영웅의 혼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할머니의 평생 소원이였을 뿐만 아니라 리광의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집념이기도 했다.
2024년 8월말, 호남측은 마적당진에서 해방전쟁시기 무명렬사 유해 수색발굴작업을 시작했다. 한 유해의 옆에서 고고학자들이 쪽지가 봉인된 유리병을 발견했다. 이 중요한 발견은 리광 가족이 대대로 전해 내려온 "전우가 리력을 적은 종이를 유리병에 넣어 함께 묻었다"는 세부내용과 일치했다. 쪽지의 글씨는 세월이 오래되여 흐릿해져 판독할 수 없었지만 이 물증의 등장은 매우 중요하고 감동적인 고고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격동되고 확신에 찼습니다. 바로 제가 만나본 적 없는 조부님이셨습니다."라고 리광은 말했다.
2025년, 왕청현퇴역군인사무국의 련계하에 리광은 DNA 친족 감정을 위한 혈액 샘플을 제공했다. 과학 감정 결과, 두사람은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기록, 구술, 유물, 과학 등 증거사슬의 상호 확인을 통해 마적당에서 70년 넘게 잠들어 있던 무명렬사의 신원은 최종 리일선으로 확인되였다.
올해 청명절기간 리광은 3대 가족의 그리움과 기대를 안고 제사를 지내러 가는 려정에 올랐다. 조부의 묘지에 서서 그는 감회에 젖어 말했다. "할머니, 아버지, 끝내 할아버지를 찾았어요. 70년이 넘었어요. 저희가 왔으니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조부의 유해를 고향으로 옮겨 안장할 지에 대해, 리광은 가족들과 상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퇴역군인사무부문에서는 렬사유가족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무료로 대행봉사를 제공하고 최고의 경의와 실제행동으로 유가족을 위로하고 영령의 넋을 달랠 것이라고 밝혔다.
70여년의 기다림, 이 려정은 한 가족에게 있어 늦게나마 이뤄진 만남일 뿐만 아니라 혁명선렬들에 대한 가장 깊은 추모이자 가장 엄숙한 경의이다. 영령의 넋은 사라지지 않고 그 정신은 영원하며 붉은 피는 대대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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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김은령
来源:延边晨报
初审:金垠伶
复审:金明顺
终审:金敬爱